- "30% 성공 가능성만 있어도… 모든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하겠다"
- '한국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선정된 SK텔레콤 김신배 사장
"FTA, 글로벌 M&A 등 국경·산업간 경계 무너지고 있어"
"글로벌 인재 육성팀 구성 다양한 국적의 리더급 인재 스카우트"
"고객은 생산 전 과정에 참여… 잠재 욕구까지 생산에 반영할 것" - 조형래기자 hr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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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최근 SK텔레콤을 한국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선정했다. 지난 2006년에는 비즈니스위크가 SK텔레콤을 세계 100대 혁신기업으로 꼽았다. 지난 주 서울 을지로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SK텔레콤 김신배(金信培·54) 사장은 SK텔레콤이 해외에서 혁신기업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 데 대해 고무된 표정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남보다 앞서서 창조하고 혁신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리더 기업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관점에서) 당장 수익이 안 난다고 해외 사업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외사업이든 새로운 서비스든 30%의 성공 가능성만 있어도 과감하게 도전해야 하며, 실패를 통한 교훈도 훌륭한 자산(資産)이 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날 "창의적 혁신이라는 인터뷰 주제가 마음에 든다"며 A4용지 크기의 대학 노트 석장에 펜으로 자신이 할 이야기를 미리 적어 나왔다. 또 인터뷰 예정 시간을 1시간이나 넘기면서 기자의 질문에 성의껏 답해줬다.
―평소에 직원들에게 창조적 혁신을 강조한다고 들었다. 배경은 뭔가.
"어디를 가든 창조적 혁신이 가장 중요한 화두다. FTA(자유무역협정)와 글로벌 M&A(인수합병), 각종 컨버전스(융·복합) 서비스의 등장으로 국경이나 산업간 경계가 무너져가고 있다. 예를 들어 통신과 미디어,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하나의 비즈니스로 간주되고 있다. 요즘엔 세계 최대의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전자 지도 비즈니스를 한다. 게다가 IT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일하는 방식까지 통째로 바뀌고 있다."
- ▲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인터뷰 내내 창의적 혁신을 화두로 던졌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을 통해 혁신을 일궈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업계에는 어떤 변화의 요인이 있나.
"통신업계가 맞을 큰 위기 요인은 대략 다섯 가지다. 먼저 네트워크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기술간 오버랩(overlap·중첩)이 심화되고 있다. 3세대 투자를 채 끝내기도 전에 LTE(Long Term Evolution) 같은 4세대 기술이 나왔다. LTE가 2010년부터 상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중복투자를 할 수 있다. 또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통신요금의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무선 VoIP(인터넷전화) 같은 파괴적 기술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구글 같은 포털업체들이 통신 분야로 진출하고 글로벌 M&A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해외사업에 심혈을 쏟는 것도 이런 배경인가.
"SK텔레콤의 해외 진출은 한국 IT산업의 도전이기도 하다. 제조업은 수출을 통한 글로벌화에 성공했지만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제조업만으로는 안 된다. IT 서비스의 해외 진출이 성공을 한다면 콘텐츠나 소프트웨어 등 많은 연관 분야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멘텀을 갖게 된다. SK텔레콤이 해외로 진출하면 콘텐츠·장비 등 많은 국내업체들도 함께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IT 서비스는 해외에서 성공하기가 정말 힘들다.
"힘들다고 포기하면 앉아서 죽는 것이다. 애당초 이 길이 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래를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고 SK텔레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네트워크 기술과 운영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구글의 창업자 에릭 슈미트는 '한국은 전세계 디지털 시대의 실험실'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첨단 서비스가 국내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
―SK텔레콤의 해외 사업 실적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미국 통신 서비스인 힐리오는 가입자가 벌써 20만 명이다. 힐리오 서비스를 하면서 미국 시장에 대해 많이 배웠고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노하우도 많이 축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하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에서 성공해야 한다. 미국이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 미국 사업을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모토로라의 제품 개발담당 부사장을 SK텔레콤의 미국 지주회사 대표로 영입했다."
―중국이나 베트남 사업은 어떤가.
"베트남 사업은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베트남은 8000만 명이나 되는 국민의 60%가 30세 이하이며, 잠재성장률이 연 12%다. 베트남은 현재 3세대 서비스로 전환 중인데 우리에게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중국 차이나유니콤에 대한 투자는 평가 이익만 2배가 넘는다. 물론 투자 수익을 내는 게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만. 위치기반서비스나 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사업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SK텔레콤 내부로 화제를 돌려보자. 최근 CIC(Company in Company)제를 도입한 것도 혁신을 위해서인가.
"자율 책임 경영을 통해 스피드와 유연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4개의 CIC는 각각 별개의 회계단위로 운영되고 직원에 대한 성과보상도 따로 한다. 사업 지향점이나 사고는 공유하더라도 구체적인 비즈니스는 부문별로 다 따로 하자는 취지다. 또 부사장·전무 같은 직급이 없어지고 모두 직책으로 부른다. 직원들은 전부 매니저다.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고 역량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자는 취지다. 당장 팀장과 매니저로 보고 체계가 확 줄었다는 게 성과다. 과거에는 프로젝트 팀장을 과장급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역량만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상급자라고 도장이나 찍고 있으면 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CIC 체제에서 대표 이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
"전체적인 방향성과 개별 CIC에서 독자적으로 하기 힘든 큰 프로젝트만 챙긴다.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은 최고역량책임자로 직원들의 역량을 축적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 봤지만 더 큰 성공을 위해 우리의 역량을 자산화시켜야 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 더 큰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면 시도를 해야 한다. 90%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면 이미 누군가가 그 사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남이 보면 30~40%의 가능성밖에 없더라도 이를 잘 관리해 90%의 가능성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게 직원들의 역량이다. 경영환경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여기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의 역량에 달려있다."
―김 사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인재 육성 전략은.
"글로벌 MBA(경영학석사) 제도를 8년째 운영하고 있다. 한해 60~70명이 미국·중국 등에서 공부를 한다. 이와는 별개로 글로벌 상비군을 운영하는데, 당장 해외 근무를 하지 않더라도 미래의 글로벌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직원들이 1년간 해외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다. 글로벌 인재 스카우트도 더 많이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HR(human resource·인재육성)팀을 구성했다. 프랑스·스페인·중국·인도 등 다양한 국적의 인재들이 이 팀에서 근무하면서 해외의 리더급 인재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조직 구성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어떤 것인가.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계속 진화를 해야 한다. 이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기업 문화다. 구성원들의 잠재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조직 문화다. 조직 문화의 핵심은 도전과 창의력, 팀워크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나로텔레콤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언제쯤 가시화되나.
"6월쯤이면 결합상품이 나올 것이다. 그 동안 유·무선 통합이라는 말을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별로 눈에 띄는 진전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쓰리 스크린 플레이(three screen play)', 즉 PC·휴대폰·TV의 세 화면을 넘나드는 서비스가 본격화될 것이다. 플랫폼 발전과 모바일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활성화로 유선이든 무선이든 구분 없이 같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진정한 유무선 통합이 가능해진 셈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융합 서비스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래야 이를 기반으로 해외로 나갈 수 있다. 국제 경쟁력이 없으면 내수 시장에서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 김신배 사장
서울대 산업공학과와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을 나왔다. 1978년 삼성물산으로 입사했고, 이후 동양그룹 종합조정실, 한국이동통신 사업전략임원,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을 거쳐 2004년 3월 사장에 올랐다. 합리적인 성품에 SK텔레콤의 글로벌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중국 차이나유니콤 지분 인수와 하나로텔레콤 인수 작업도 그의 작품이다.
―정부는 통화요금을 더 낮추겠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입장은.
"새로운 기술 도입에 따른 시설 투자와 해외 투자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또 이미 망내 할인이나 결합상품 등의 형태로 자발적인 요금인하를 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인위적으로 가격을 더 내리게 되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통신 산업을 단순히 비용 이슈로만 보지 말고 통신 산업이 기업 생산성 향상과 개인의 정보 접근성에 공헌했다는 점도 감안해 줬으면 좋겠다."
―김 사장께서 지향하는 SK텔레콤의 미래 모습은.
"무언가를 남보다 앞서서 창조하고 혁신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마라톤에서도 선두에 서서 달리는 사람이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들보다 훨씬 힘들다. 하지만 그걸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 리더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창의력·혁신·리더십을 통해 얻는 결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나눌 것이다. 이런 공유의 정신을 통해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월드리더가 되자고 항상 직원들에게 이야기한다."
―고객 행복 경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인가.
"요즘엔 '고객 2.0' 시대라고 한다. 고객은 더 이상 기업이 만들어주는 제품을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은 생산의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고객이 표현하지 않는 잠재적 욕구까지 끄집어 내어서 제품 생산에 반영해야 한다. 상생경영이나 환경경영 같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도 큰 틀에서 보면 고객만족 경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고객만족경영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입력 : 2008.05.08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