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제이콥스 퀄컴 CEO 인터뷰
- "다양한 서비스 혁신으로 휴대폰 혁명 이끌겠다"
"와이브로보다 4세대 통신기술이 전망 밝아
로열티 받지만 향상된 기술로 보답하고 있어" - 조형래 기자 hr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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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휴대폰 칩 제조업체 퀄컴은 한국 입장에서는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기업이다. 퀄컴의 CDMA(미국식 디지털) 기술은 한국 이동통신 산업의 비약적 성장과 삼성전자·LG전자 같은 글로벌 휴대폰 메이커의 탄생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퀄컴은 기술 사용의 대가로 지난 10여 년간 4조원이 넘는 로열티를 걷어가 한국 기업들 사이에는 이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 존재한다.
폴 제이콥스 CEO(최고경영자)는 창업자인 아버지 어윈 제이콥스 이사회 의장의 셋째 아들로 지난 2005년부터 퀄컴을 이끌어가고 있다. 최근 방한한 그를 서울 강남의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만났다. 큰 키에 신중한 표정의 그는, 기자가 6년 전에 인터뷰한 어윈 회장을 빼 닮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이야기보다 휴대폰의 미래와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할 때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그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을 훨씬 능가하는 모바일용 칩셋을 연말이나 내년 초쯤 내놓을 것"이라며 "이런 혁신 덕분에 휴대폰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무한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또 국제기술 표준경쟁과 관련, "(인텔과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와이브로(휴대인터넷) 기술보다는 유럽·미국의 주요 통신업체들이 주축이 된 4세대 통신기술 LTE(Long Term Evolution)가 대세를 차지할 것"이라며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 ▲ 폴 제이콥스 CEO는“휴대폰은 데이터 통신이나 멀티미디어 방송 등 새로운 서비스가 끊임없이 추가되면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최근 미국에서 열린 북미 이동통신 전시회에서 휴대폰 혁명을 이야기했다. 어떤 의미인가.
"휴대폰은 무엇보다 우리가 항상 들고 다니는 네트워크 기기이며, 여기에 소비자 가전이나 컴퓨팅 같은 새로운 기능이 끊임없이 추가되고 있다. 금융이나 위치기반 서비스는 물론이고, 휴대폰은 훌륭한 의료 정보기기로도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들이 휴대폰을 이용한 원격 진료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요즘 퀄컴의 기술 주도력이 과거 CDMA 시절에 비해 다소 약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퀄컴은 오랜 기간 동안 무선 기술과 시스템 설계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유지해 왔다. 이런 질문은 몇 년 전 3세대 이동통신이 상용화될 때에도 있었지만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현재 통신업계의 큰 트렌드는 커뮤니케이션 기기의 중요성이 갈수록 더 커진다는 것이다. 휴대용 기기들의 컴퓨팅 능력이 갈수록 향상되고 전력 효율이 좋아지면서 무선 인터넷 산업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퀄컴은 이 무선인터넷 기술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인텔이 휴대폰용 칩셋 시장에 진출한다고 했다.
"인텔은 자신들의 강점인 컴퓨터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을 활용해 모바일용 칩셋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컴퓨터와 휴대폰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어 인텔의 노트북PC CPU(중앙처리장치)는 빠른 정보처리 속도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전력 효율성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그러나 휴대폰은 전력 소모량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컬컴은 현재 '스냅드래곤'이라는 모바일용 칩셋을 개발하고 있다. 이 칩셋은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비해 전력 소모량이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존 제품에 비해 10배나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제품이라면, 앤디 글로브 전 인텔 CEO가 말했듯이, 시장에서 혁신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스냅드래곤은 언제쯤 출시되나.
"스냅드래곤은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와 모바일 컴퓨터 제품의 칩셋으로 쓰일 것이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출시될 것이다."
―인텔과 삼성전자 등이 주도하는 와이브로 무선인터넷 기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와이맥스(해외에서는 와이브로를 모바일 와이맥스라고 부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고 모멘텀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차세대 기술로는 LTE(Long Term Evolution)가 갈수록 힘을 얻어가고 있다. 또 LTE 만큼은 아니지만 퀄컴이 개발한 UMB(Ultra Mobile Broadband)도 있다. UMB 기술이 LTE 표준에도 많이 반영돼 네트워크의 성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왜 와이브로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한국 기업이) 와이브로를 글로벌화하려고 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는 가입자 기반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와이브로의 설계 자체가 모바일용에 최적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바일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와이브로는 LTE나 UMB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시장에 먼저 나왔다는 강점도 다른 기술에 밀려 빛이 바래고 있다."
―퀄컴의 로열티 정책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불만이 많다. 로열티 정책은 변화가 없는가.
"퀄컴은 기업들이 내는 로열티 수익을 연구개발 투자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파트너들에게 더 좋은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로열티에 관한 기본적인 정책은 과거와 비해 큰 변화가 있을 수 없다. 퀄컴이 로열티를 받지만 파트너들에게 더 향상된 기술로 보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퀄컴이 한국 사회에 좀 더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장학금 제도와 리서치 부문에 대한 투자 등 하는 일이 많다. 한국 학생들을 매년 샌디에이고 퀄컴 본사에 초청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뛰어난 이공계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다. 우리는 실제로 능력 있는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데 가장 많은 돈을 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와이어리스 리치'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전세계 19개국에서 29개의 공익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다 더 편하게 무선환경에 접속하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다. 또 우리는 항상 파트너와 함께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우리는 소비재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파트너들이 중요한 고객이다. 삼성이나 LG전자는 이런 파트너십 속에서 세계 최고의 휴대폰 제조업체로 발돋움했다고 자부한다."
―'미디어플로'라는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심혈을 쏟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도 유사한 DMB(멀티미디어방송) 서비스가 있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나는 미디어플로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제공하고 있는 케이블TV 채널에 공중파가 추가되면 상당한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 미디어플로 서비스가 당초 예정보다 조금 늦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파트너인 미국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존이 당초 기대만큼 적극적으로 서비스 확대에 나서기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달부터는 (미국 통신업체) AT&T도 새롭게 미디어플로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 활성화되어 버라이존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미디어플로는 어떤 것인가.
"미디어플로를 통해 TV 프로그램은 물론, 다양한 쌍방향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특히 퀄컴은 미디어플로를 위해 독특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했다. 이 디스플레이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휴대폰 화면을 켜진 상태로 유지한다. 여기에 뉴스나 금융, 날씨 정보 등 다양한 콘텐츠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면서 화면이 바뀐다. 이로 인한 전력 소모 문제도 걱정할 게 없다. 이런 기술들이 미디어플로 서비스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
―퀄컴은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벤처의 상징으로 꼽힌다. 비결이 뭔가.
"우리는 항상 경쟁업체들과는 다른 길을 갔다. CDMA 이동통신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른 대부분의 기업들이 TDMA(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채택했지만 우리는 CDMA로 큰 성공을 거뒀다. 또 하나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좋은 파트너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휴대폰 제조에 관한 한 우리가 그들보다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그들과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휴대폰에 접목시켜 왔다. 기술투자에서도 퀄컴만큼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회사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퀄컴은 전체 매출의 21%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하는데, 그 투자 금액의 40%를 2~3년 안에는 수익이 나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에 배당한다."
―아버지에 이어 CEO에 올랐다. 이사회에서 당신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생각하나.
"아버지와 나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아버지는 무선 테크놀로지 기술 개발에 관심을 집중했다. 반면 나는 무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이런 분야에서 일을 많이 했다. 나는 항상 네트워크에 기반한 휴대폰의 사용 영역을 어떻게 확장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무선 데이터나 위치기반 서비스, 미디어플로 등 새로운 서비스가 미래를 이끌어갈 것으로 생각한다."
→ 퀄컴과 폴 제이콥스
퀄컴은 지난 1996년 한국의 SK텔레콤과 함께 CDMA 기술에 기반한 이동통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시키면서 대표적인 휴대폰 칩셋 제조업체로 부상했다. 휴대폰 칩셋은 PC의 CPU(중앙처리장치)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이다. 작년 매출은 88억7000만달러, 순이익 33억300만달러.
폴 제이콥스(45) CEO는 공동창업자인 어윈 제이콥스 이사회 의장의 셋째 아들로 미국 UC 버클리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90년 디지털 신호처리 엔지니어로 퀄컴에 입사했다. CDMA 상용화, 무선 플랫폼, 미디어플로 등 핵심 사업을 주도했다. 휴대폰 사업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다.
입력 : 2008.04.24 15:39 / 수정 : 2008.04.24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