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지도 장악 나선 노키아의 야망
김종호 기자 tellm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세계 전자지도 업계 1위인 나브텍(Navteq)을 인수했다. 이로 인해 휴대폰 업계는 물론 전자지도 업계와 자동차 길안내 장치(내비게이터) 업계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당장 세계 1위 내비게이터 업체인 ‘톰톰(TomTom)’은 방어책으로 세계 2위 전자지도 업체인 텔레아틀라스 인수에 뛰어들었다. 지도 찾기 서비스가 가능한 휴대폰을 개발, 세계 휴대폰 시장의 틈새공략에 나섰던 애플과 구글도 노키아의 나브텍 인수에 긴장하고 있다.
전자지도 업계 세계 1위 나브텍
노키아가 나브텍을 인수한 금액은 81억달러(7조45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올해 나브텍의 예상 순이익의 50배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최근 이뤄진 미국 3대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의 매각금액 74억달러보다 크다. 나브텍이 어떤 회사이길래 노키아가 이처럼 높은 가격에 인수했을까.
미국 나브텍은 세계 최대 전자지도 업체다. 세계 전자지도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강자다. 자동차 길안내장치(내비게이터)와 인터넷 지리정보 서비스 등 전자지도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나브텍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브텍이 제작한 전자지도는 자동차 길안내 장치는 물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지리정보 서비스에 필요한 핵심 요소다.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업체는 예외 없이 나브텍의 전자지도가 들어간 길안내 장치(내비게이터)를 장착하고 있다. 구글이 자랑하는 지도서비스도 나브텍의 전자지도를 기본으로 해서 이뤄졌다. 나브텍 본사의 마크 나델(Marc Naddell) 부사장은 “전 세계인들이 나브텍의 전자지도를 터치하는 회수가 하루 9000만 번에 이른다”고 말했다.
▲ ▲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가 최근 세계 1위 전자지도 회사 나브텍을 인수함에 따라 휴대폰?전자지도?자동차 길안내 장치 등 관련업계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사진은 혼다 아큐라 SUV(지프형차)에 장착된 자동차 길안내 장치의 모습. /블룸버그

나브텍이 세계 최대 전자지도 회사로 성장하기까지는 10년 가까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전자지도 개발투자에만 전념한 인고(忍苦)의 세월이 있었다. 나브텍은 세계적인 전자회사 필립스의 자(子)회사로 1985년 미국에서 출범했다. 필립스 경영진은 차량용 길안내 장치와 인터넷 지도검색 서비스, PDA(개인 휴대 단말기), 휴대폰 등 모바일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자지도가 핵심 요소의 하나가 될 것으로 판단, 전자지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브텍의 전자지도가 들어간 최초의 상업용 내비게이터가 등장한 것은 1994년 북미에서였다. 1996년엔 유럽에도 내비게이터가 판매됐다. 필립스는 2004년 나브텍을 뉴욕증시에 상장시키면서 대부분 지분을 매각해 대규모 이익을 챙겼다.
노키아는 이번에 나브텍의 일반 투자자 지분을 프리미엄을 주고 사들여, 나브텍을 인수했다. 나브텍은 지난해 매출액 5억8161만달러(약5350억원), 영업이익 1억5369만달러(약 1413억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것)이 26.4%로 매우 높은 편이다. 본사는 미국 시카고에 본사를 있고 28개국 167개 사무소에 28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지난 2005년 국내 전자지도 업체 픽쳐맵인터내셔날(PMI)을 인수, 국내에도 진출했다.
나브텍 인수한 노키아의 전략
노키아가 예상보다 큰 금액에 나브텍을 인수한 것은 우선 나브텍 자체의 경쟁력 때문이다. 나브텍의 역사에서 보듯, 전세계 전자지도를 단기간에 개발할 수 없고, 설령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세계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절대 1위 업체로 만들기가 어렵다.
위치기반 서비스의 기초가 되는 전자지도를 선점(先占)하려는 의도도 강하다. 위치기반서비스(LBS·location-based service)는 지리정보와 IT기술이 합쳐진 서비스로 IT 업계의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떠오르는 분야다.
예를 들어 세계 1위 검색사이트 구글의 지도 사이트 ‘파인드 비즈니스’에서 미국 뉴욕 맨하탄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으면 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이탈리아 음식점이 지도 위에 표시된다. 식당뿐만 아니라 호텔·여행안내센터·쇼핑몰·부동산정보·교육기관 등 다양한 정보를 안내해 준다. 맨하탄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편리한 정보다. 구글 지도사이트에서 마이맵스 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신이 주로 찾는 업종의 위치정보를 볼 수 있고, 검색한 서로 다른 업종의 위치 정보를 하나의 지도 위에 표시할 수도 있다.
노키아는 미래의 위치기반 서비스 중심이 PC에서 휴대폰으로 옮겨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자들이 움직이면서 휴대폰을 통해 다양한 위치정보를 빨리 얻도록 한다는 것이다. 휴대폰에 전자지도를 넣고 여기에 각종 위치정보를 담는다는 것이 노키아의 기본 전략이다. 전자지도에 맛집 위치와 메뉴, 주유소와 기름값, 부동산 시세, 쇼핑몰, 대중교통 정보 등을 표시, 이용자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키아는 위치기반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전자지도를 내장한 휴대폰이 각국 이동통신 업체들과 단말기 납품협상을 하는 데에도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이 성숙한 선진국의 경우 이동통신 업계는 요즘 음성통화로부터 얻는 수익이 한계에 다다르자, 위치기반서비스와 모바일 게임 등 새로운 부가가치 사업을 찾고 있다. 결국 노키아는 나브텍의 전자지도를 활용해 세계 휴대폰 시장의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지키겠다는 것이다.
전자지도 관련업계 파장

노키아의 나브텍 인수는 지도검색 서비스를 앞세워 휴대폰 시장을 파고 들려는 구글과 애플에 강한 견제구로 작용할 전망이다. 구글과 애플은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최근 구글폰과 아이폰을 개발, 휴대폰 틈새시장 공략에 나섰다. 특히 애플은 터치스크린과 MP3 기능을 갖춘 아이폰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들 구글폰과 아이폰의 특징 중 하나가 지도검색 서비스다. 구글은 나브텍의 전자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지도 찾기 서비스를 아이폰에도 공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키아가 나브텍을 인수함에 따라 구글과 애플의 지도검색 서비스는 견제를 받게 됐고, 휴대폰의 판매도 상당부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전자지도와 내비게이터 업계도 후폭풍이 불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내비게이터 제조업체인 톰톰은 최근 전자지도 업계 세계 2위인 텔레아틀라스 인수를 위해 14억유로(약 1조8000억원)를 차입키로 했다. 톰톰은 지난 7월 텔레아틀라스를 27억달러(약 2조48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신용 위기를 맞아 인수과정이 지연됐다. 톰톰이 신용위기에도 불구, 대규모 차입을 통해 텔레아틀라스 인수를 서두르는 것은 나브텍이 노키아 계열사로 편입된 것과 관련 깊다는 분석이다. 길안내 장치의 핵심인 전자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채, 껍데기에 해당하는 내비게이터 생산기술만 갖고서는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현재 삼성전자가 나브텍코리아(옛 PMI)로부터 전자지도를 공급 받아 차량용 길안내 장치를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으나, 노키아가 나브텍을 인수함에 따라 전자지도를 공급받는 관계가 됐다. 나브텍코리아의 서영택 부사장은 “현재 삼성이 생산중인 내비게이터가 국내 시장용이어서 전자지도를 계속 공급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지도
디지털 맵(digital map). 말 그대로 종이지도를 컴퓨터에서 볼 수 있도록 디지털화한 지도다. 종이지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전자지도는 자동차 길안내 장치(내비게이터)나 인터넷의 지도검색 서비스의 핵심 구성요소다. 전자지도가 들어있는 단말기를 이용하면 현재위치·주유소·음식점·목적지 가는 길 등 각종 지리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다. 행정기관이 도시계획을 하거나 재해대책·범죄수사 등을 하는 데에도 활용가치가 높다. 최근엔 고객의 속성이나 지리적 분포를 분석하는 마케팅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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