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동유럽·아(亞)·남미 등 10여 국가, 외환위기 빨간불
고유가·금융경색으로 악재들 쏟아져
'거품 호황'때 돈 빌려 쓴 국가들 '휘청'
발틱3국·베트남 등 이상 징후 나타나
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세계 경제에 동시다발 외환위기 경고등(燈)이 켜졌다.
유럽 발틱 3국부터 베트남·인도·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그리고 남미 아르헨티나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금융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10여 개국이 외환위기 위험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각종 지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보다도 더 나빠진 상태다. 대부분이 지난해까지 과잉 유동성(流動性·자금흐름)으로 세계 경제가 거품 호황을 누릴 때 마음껏 돈을 빌려 쓰며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이다.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 형편이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세계 금융시장이 경색되면서 돈줄이 막혀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원자재 값 급등으로 이들 국가의 경상수지 적자 폭은 커져가고 있어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체력)도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는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시장으로 떠오른 신흥 경제국들이 많다. 만일 동시다발 외환위기가 현실화되면 우선 우리나라 수출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또 세계 금융시장이 교란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빚에 신음하는 유럽 신흥국=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의 경제지표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이들 국가는 해외에서 차입한 돈을 바탕으로 7~10%의 성장을 거듭해왔다. 대외채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과 거의 맞먹는다. 그러나 최근 고유가, 금융경색 등 악재들이 겹치면서 발틱 3국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고유가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가 GDP 대비 20% 선을 오르내리고, 소비자물가 상승률(4월)도 17%에 달할 정도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경상적자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모두 4%대였다.
불가리아보스니아, 세르비아도 지난해 GDP대비 경상적자 비중이 20%에 육박하고, GDP대비 총 외채의 비율도 50%를 넘본다.
1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태국·인도네시아의 GDP대비 대외채무 비중이 50% 안팎이었다. 세계은행과 국제 신용평가 기관들은 올 초부터 동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내리고 금융위기를 경고했다.
◆아시아와 남미의 위험국들=베트남은 25.2%(5월 기준)에 달하는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겪고 있다. 또한 원자재 값 상승으로 올 1~5월 상품수지 적자는 144억 달러로 전년동기(38억 달러)에 비해 4배가 폭증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외환보유액 대비 외채 비율은 238.6%와 168%로 베트남(90.9%)보다 훨씬 높다. 베트남이 쓰러질 경우 함께 비틀거릴 가능성이 크다.
S&P는 지난 5월 파키스탄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B'로 내린 데 이어 향후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춰 추가 하향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파키스탄은 지난 2005년부터 GDP대비 4~5%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내왔다. 정치 혼란으로 경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외국인의 투자가 감소하는 가운데 1년 만에 대외부채는 30% 이상 늘었다.
인도도 빚에 허덕인다. 현재 인도의 총부채는 GDP의 78%에 달하고, 이자를 갚는 데만 정부 수입의 30%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증권회사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말 "베트남이 쓰러지면 두 번째는 인도"라는 보고서를 냈고, 신용평가기관인 S&P도 인도에 대해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아르헨티나의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GDP의 56%에 달한다. 지난 2001년 디폴트를 선언했을 당시(54%)보다 높다. 물가도 폭등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 3년간 소비자 물가가 연 평균 9% 올랐다고 발표했지만, 민간 연구기관들은 실제로는 20~30% 이상 오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안해진 중산층이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달러 사재기에 나서면서 이른바 뱅크런(Bank Run·은행에서 돈이 무더기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S&P는 지난 4월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한국에 미칠 영향=동유럽과 아시아, 남미의 신흥시장까지 경제위기가 덮치면 우리나라에도 파장이 우려된다. 현재 우리 경제가 내수부진 속에서도 버티는 것은 이들 지역으로의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중남미 지역 수출 증가율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1%, 동남아는 2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유럽 지역 수출도 23%나 늘어 미국(10%), 일본(18%)을 압도했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연구원은 "동시다발적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우리나라의 수출이 감소할 뿐 아니라, 아직 신흥국가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들이 투자자금을 뺄 수 있다"며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면밀히 상황을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력 : 2008.06.17 21:18 / 수정 : 2008.06.1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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